"나쁜 소식, 좋은 소식 가리면서 전달하는 게 무슨 전령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그렇다면 자네를 죽도록 괴롭히다가 죽이라는 명령을 전해야 한다면 어쩔 텐가?"
"일단 전한 다음에 생각해보죠."
-어디엔가에서의 대화.
Hermes Exprees / 02
사실 몰상식과 불법의 편에 자리잡고 있는 직종이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기에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엄연히 양지바른 곳에서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회사다. 가끔은 농담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마는.
상호명은 헤르메스 익스프레스. 이름에서 보다시피 운송업체다. 물론 페덱X 라던지 기타 기업들처럼 전 세계에 운송망을 뻗어놓고 있는 굴지의 기업들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긴 하지만, 적어도 특수운송-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연구용 물품이라던지, 사업관련 기밀 문서라던지, 아무튼 이런 거 비슷한 것들 같은-분야에서는 나름대로 평이 꽤 괜찮은 회사다. 사실 여기서 눈치좋은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꽤나 리스크가 높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거다. 맡는 물건들이란 것들이 남에게 넘어가선 안 될 것들이 많다 보니까 자회사 직원 이외에 다른 사람을 물건 지키는데 쓰는 것도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한 노릇이고, 그렇다 보니 알게 모르게 우리 자회사의 윗대가리라는 분들은 용병이라던지, 해결사라던지 아무튼 돌발상황 등에 대비해서 힘 좀 쓰고 총 좀 쏘는 양반들을 공공연히....는 아니고, 아무튼 뭐 채용하고 있다는 소리지.
근데, 문제가 있다면 이런 사람들을 모아 둔 게 상식 안에서 통용될 만한 사람만 모아뒀다면 모를까, 능력우선주의로 사람을 뽑다 보니 가끔 법은 물론이고 상식이라는 차원에서도 이탈하신 분들이 가끔 섞여들어온다는 것이다. 만화같은 이야기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그건 사실이고(직접 보기도 했었으니까), 그런 양반들의 입소문인지, 동업자(?)끼리의 정보교환 등등을 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새 우리 회사는 그런 비상식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까지 고객으로 삼게 됬다. 물론 사람들의 이미지라던지 그런 게 있으니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거래긴 하지만 말이다. 뭐, 고객층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 회사 경영진이 기뻐했는지, 아니면 어느새 알게 모르게 뒷면에 흥신소 내지는 해결사 단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자체 경호팀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른 운송업체에서 퍼트린 악의적인 루머이긴 하지만, 사실 그다지 틀린 소문도 아니다. 말이 특무운송국이고 특무운송국 산하 경호팀이지 사실상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해결사라고 해도 무방하니까. 자회사 간판 달고 하는 부업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에 슬퍼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높으신 분들 생각을 어찌 하급사원이 알리오.
아무튼 내가 어제 물건을 떠밀리듯이 받아가지고 나온 '만물가게' 라는 곳도 그런 곳에 해당되는 곳이다. 여기까지 같이 동행했던 고참사원인 마틴의 말로는 최소한 5년 전부터 우리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고 하던가, 뭐 그런 속사정따위는 아무래도 좋은데...
"뭐?"
"그러니까, 음, 제가 신입인 것도 있고 하니까 좀 도와주셨으면..."
"동행 말고 더 시킬 게 있다고?"
"그, 그게...."
"임마, 사나이라면............아, 미안. 남자가 아니었지. 아무튼간에 여기 특무운송국에 채용될만큼 강한 아가씨가 그렇게 쫄아가지고 일 하겠어?"
"어, 아니, 그게, 전 강하다기보다는..으...그리고 어... 긴장하면 말이 버벅...."
"아-아-아-악!!!! 이런 제기랄, 답답해 죽겠네! 그래서 뭐야, 도와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우와-. 이게 아닌데. 젠장, 나라고 말을 더듬고 싶어서 더듬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타고난 버릇이 그런 걸 나보고 어쩌라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 나는 다시 마틴에게 말했다. 보고 끝마치고 오니까 상부에서 멋지게 한 마디 하더라고. '뭐 자네가 신입인 것도 있고, 어차피 만물가게 쪽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마틴 정도일 테고, 뭐 다른 사람 더 붙이려고 해도 일단 여유인원이 별로 없으니까 마틴 말고는 없는 거 같다. 임무 여하에 따라 더 붙을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틴이 제일 최소선택사항이야' 어쩌고 했다는 거 정도?
그런데 마틴의 표정이 영 시원찮은 게, 만물가게 앞에서 봤던 귀찮음에 찌든 표정 그대로였다. 이런 제기랄, 설마 다 듣고 나서 '귀찮아' 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귀찮게시리."
우와. 아무래도 나한테 예지의 능력이 생겼나보다. 그냥 여길 때려치우고 돗자리를 깔아도 되겠군. 제기랄.
속으로 온갖 잡소리를 씹으며 돌아서려는 순간 마틴이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아까 전 얼굴과 사실 그다지 다르진 않았지만, 뭐랄까 약간 미묘하게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 야, 잠깐, 어디 가냐? 설명 안 해줄 거야?"
"뭐, 뭘요?"
"상부에서 나보고 같이 하라매? 근데 업무 이야기는 너 혼자 들었잖아."
"귀찮다면서요. 어, 음, 뭐 그러니까.. 안 하실 거 아니었어요?"
"사람 말 좀 끝까지 듣고 가라. 상부에서 까라는 데 안 할 놈이 어딨어? 가뜩이나 박봉인데 나보고 업무 거부 혐의까지 씌우려고?"
쓴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일을 그만 두고 돗자리를 까는 건 추후로 미뤄야 할 듯 싶다.
그러니까, 내가 물건을 받고 나오기 전에 있었던 루인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이랬다.
최근에, 만물가게 쪽에서는 자기네 VIP에 대한 모종의 위험을 감지했다.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고 하다기보단 진부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평범함과는 별로 친하지 않으니까. 아무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류의 위험은 아니었다. 정확한 것은 들을 수 없었지만, 루인이 말한 것은 그 정도였다. 그 모종의 위험을 방치해 둘 경우, 단순한 만물가게의 최대 투자자를 잃는 것이나 이 세계의 거물 한 명이 사라지는 차원이 아닌, 만물가게같이 공공연히 세상에 나올 수 없는 단체들이 우글우글 달려들어서 뒷처리에 나서야 될 정도로 귀찮아질 사태가 발생하게 될 거라고.
물론 루인은 뒤에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된다면 말입니다' 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최악의 사태란 놈은 의외로 현실과 상당히 친한 편이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확률은 최선의 사태가 일어날 확률과 동일하다' 라는 세간의 법칙이라던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발언을 손쉽게 엿먹이는 놈 중 하나니까. 물론 나도 아는 걸 만물가게 측에서 모를 리 없지만, 아쉽게도 만물가게는 물건을 팔지 무력을 파는 용병단체는 아니다. 실력행사를 할 만한 여건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인력을 판다. 필요하다면 무력도. 게다가, 우리는 일단 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한다. 중간에 힘들고 괴로워서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라고 구시렁거릴지언정 그만두진 않는다는게 우리의 장점이다. 요약 끝. 이상.
물론 이렇게 요약하기까지는 의외로 긴 시간이 걸렸다. 심각한 이야기 내용과는 다르게, 루인의 말투는 평온하고 담담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느려지는 효과가 부수적으로 딸려왔다. 입구에서 만났던 우산도 안 쓰고 나왔던 청년(인가 여성인지 좀 헷갈리는, 아니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에라, 그냥 청년으로 통일하자)는 어느 새 가게 안으로 들어와 루인과 나의 대화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리고, 루인은 이야기 중간 중간에 끼여드는 청년과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덕분에 요약과 정리는 중간에 끊기기 일쑤였다. 평화로움 속의 악전고투였던 셈이다. 다행히도 내가 '언제까지 이런 분위기에서 속으로 끙끙대고 있어야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할 때쯤에, 루인은 만물가게에서의 퇴거를 정중히, 기분나쁘지 않게 종용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우리 대신에 스티븐 시걸이나 척 노리스가 가는 게 더 어울리겠는데."
"좀 안 어울리지 않아요?"
"그럼 브루스 윌리스가 '내가 존 맥클레인이다' 하면서 나가도 되겠고."
마틴의 소감은 간단했다. 별 태클을 걸 만한 거리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랑 의견이 같았으니까. 이 사람과 가장 처음으로 의견 일치를 본 게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거라서 좀 슬퍼지긴 했지만.
"이거 뭐, 멘트만 좀 수정하면 할리우드 판타지잖아요. 악당들의 손에 전설의 비보가 넘어가려고 한다! 비보가 넘어가면 세상이 끝장이다! 이런 거."
"......브랜든 프레이저가 더 어울리겠군. 더러운 악당놈들! 너희들에게 그걸 넘겨줄 순 없어! 같은 멘트 하면서 권총 쏘고 칼 휘두르면 딱이네."
"그러게요."
"근데, 한 가지 이상하지 않냐?"
"예?"
나의 얼빠진 대답에 마틴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에 담배를 꺼내들었다. 한 개피를 입에 물고서 이로 이리저리 담배를 굴리던 마틴은 담배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물건에 대한 언급이 없었잖아. VIP에 대한 위험이 어쩌고 했다는 이야기는 네가 했는데, 그 뒤에 뭐 물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어?"
"예. 없었는데요."
"진짜로? 뭐야. 만물가게 쪽 VIP라고 해봤자 별로 없을 텐데......음................어, 잠깐. 어디로 가라고 장소 이야기 했었나?"
"아뇨. 이제 할 참이었는데."
"어딘데?"
"태양마루 길 1389번지요. 드미첸 컴퍼니 본사."
"뭐? 잠깐. 드미첸 컴퍼니? 설마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아마 지구에서 경제활동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드미첸 컴퍼니?"
"네. 저도 농담인 줄 알아서 다시 물어봤는데 거기 맞다는데요."
내 말에 마틴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니까, 나중에야 알게 됬지만 마틴과 내가 내뱉게 될 기나긴 서사시.........에 가까운 설명과 불평과 신세한탄의 전주곡이었다.
세상에, 정말로 그 때만 하더라도 그 정도로 무지막지할 줄은 몰랐는데.
죄송합니다. 끊다 보니 2화는 좀 심각하게 짧군요;
3화는 조금 늘어난 분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어ㅡㅎ어흫그ㅡ흑ㅎㄱ



덧글
팅뤠 2009/01/01 23:56 # 삭제 답글
애가 더 타는듯() 하악하악 그나저나 쥔공이 여자군요 마틴한테서떨어져마틴은오르샤꺼임
붉은바람 2009/01/02 00:12 #
너무 짧게 끊어서 미안할 지경이다 [......] ㅈㅅㅈㅅ내가 좀 여주인공을 좋아하지 ㅋㅋㅋㅋㅋㅋㅋ
괜찮음 마틴은 우리 모두의 것임 [문제발언]
xizang 2009/01/02 09:23 # 삭제 답글
그러니까 그 청년이 비나......?아니, 2편 길이가 이게 뭔가염...[짤짤짤]
누님이 기다리시는데 어서 3편 올리지 못하시겠어염? [짤짤짤]
붉은바람 2009/01/02 11:41 #
에이 아시면서. []
호들 2009/01/02 11:03 # 삭제 답글
아니 2편 길이가 이게 (후략)내가 기다리는데 어서 (후략)
ㅇㅂㅇ맛깔라는 묘사. 블랙라군이 생각나는 저 인물열거들.
아는사람만안다는게슬프긴하지만 굳ㅋ
기대하겠음.
붉은바람 2009/01/02 11:42 #
대담한 후략 사용이 내 심금을 울리는군요뭐 영화 좀 봤다 싶으면 워낙 유명한 양반들이라 (....)
히테이 2009/01/03 20:12 # 삭제 답글
ㅠㅠ 가뜩이나 박봉인데ㅋㅋㅋㅋ 중간에 오오 브랜든 프레이져/초롱 하고 눈을 밝힌 어딘가의 파슨희(..엣취)주인공 누나 넘 좋음*-_-* 에헤ㅔ헤ㅔㅔ헤헤ㅔㅎ헤 전투씬도 넣어줘요 헤헤ㅔㅎ (응?)
붉은바람 2009/01/03 21:33 #
어째 뭐랄까 미이라도 그렇고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도 그렇고 나오는 영화 스타일이 [.....]저도 주인공이 흠좀좋습니다. 근데 약하군요 어?!